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앤드루 카네기 (문단 편집) == 기타 == 비서에 따르면 화를 낼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해피]]한 기분을 유지하는 편이었다고 한다. [[우울증]]에 자주 시달린 록펠러와 대조되는 부분. [[표트르 차이콥스키]]가 미국 여행 중에 카네기를 만난 적이 있으며 카네기홀 개장식 때 축하연주회 지휘를 했다. 나폴레온 힐(Napoleon Hill, 1883-1970)과의 일화가 있다. 당시 [[기자]]였던 나폴레온 힐은 운 좋게 카네기와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나서 힐의 포부를 들은 카네기는 그에게 자신이 아는 부자 507명(‘자동차 왕’ 헨리 포드(Henry Ford, 1863-1947), ‘전화 왕’ 알렉산더 그래험 벨(Alexander Graham Bell, 1847-1922), ‘발명 왕’ 토머스 에디슨(Thomas Edison, 1847-1931) 등)과 연을 대줄테니 그들과 인터뷰를 해보라고 했다. 대신 보수는 "0". 힐은 잠시 망설이다가 승낙했고 20년간 무보수로 거부들과 인터뷰를 하고 자료를 모았다. 카네기는 힐에게 한푼도 줄 수 없는 이유를 나중에서야 이야기해줬다는데, 그 이유는 이렇다. “나는 성공의 노하우를 당신에게 직접 가르쳐 주었다. 게다가 성공한 많은 사람들과 그 방면의 대가와 당신은 앞으로 오랜 세월 서로 협력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당신이 성공 못할 이유가 있겠는가?" 힐은 카네기와 약속한 지 정확히 20년 후인 1928년 전8권으로 된 [성공의 법칙(The Law of Success)]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카네기는 이미 9년 전에 사망했지만, 힐은 카네기와의 약속을 동력 삼아 20년간 성공학에 몰두한 끝에 그 나름의 대작을 내놓은 것이다. 그는 카네기가 원했던 수준 이상의 작업을 통해 ‘성공학 전도사’의 입지를 탄탄히 굳힐 수 있었다. 1930년대 대공황 시절엔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D. Roosevelt, 1882-1945) 대통령의 보좌관으로 일하는 등 정관계에도 영향력을 미치는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후 힐은 [성공의 법칙]의 보급판 책의 집필에 착수해 1937년 [생각하라, 그러면 부자가 되리라(Think and Grow Rich)]를 출간하였고 2023년까지 전 세계 1억 2천만 부가 팔린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의 한국어 번역판 제목은 [놓치고 싶지 않은 나의 꿈 나의 인생]) 이후 나폴레온 힐 재단을 설립해 많은 사람들에게 성공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가르쳤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나폴레온 힐의 '성공 방적식' (주제가 있는 미국사, 강준만),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576574&cid=59017&categoryId=59017]]) 카네기의 어머니가 비를 피하느라 가구점 처마 밑에 서 있다가, 친절한 가구점 직원 덕분에 가구점 안에 들어가 비가 그칠 때까지 가구 구경을 하며 편안하게 시간을 보냈다. 나중에 카네기가 자기 업체에서 쓸 많은 가구를 그 가구점에서 주문해서, 가구점이 큰 이익을 보았다는 일화가 있다. [[결혼]]을 굉장히 늦게 했다. 아버지 사망 후 홀로 된 어머니를 돌본다며 결혼하지 않다가, 어머니가 사망한 뒤인 52세의 나이로(재혼도 아닌 첫 결혼) 22세 연하의 여성인 루이스 휘트필드와 결혼했다. 평균수명이 짧았던 당시 기준으로는 할아버지가 되어서 결혼한 셈이다.[* 여담으로 결혼 당시 카네기보다는 훨씬 젊기는 했지만, 아내 루이스 휘트필드도 그 시절 기준으로 매우 늦게 결혼했다. 여성 대부분이 10대 중후반에 결혼하던 시대였는데 30세에 결혼했다.] 평균수명이 길어지고 만혼이 잦아진 현대 기준으로도 충분히 늦은 결혼이니, 현대로 치면 70대에 결혼한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두 사람 모두 당시 기준으로는 결혼을 늦게 해서인지 둘 사이에 자녀는 딸인 마가렛 카네기 밀러 하나뿐이었는데, 이 딸은 카네기가 무려 62세, 휘트필드가 40세일 때인 1897년 태어났다. 인간관계론을 만든 [[데일 카네기]]와 이름이 비슷해서 이 카네기가 인간관계론을 만든 걸로 착각하는 이들도 있다. 물론 이 부분은 데일 카네기도 노린 점이며, 앤드류 카네기의 유족들도 저런 착각이 나쁘지만은 않았는지 별다른 대응을 했다는 이야기는 없다. 우스갯소리로 카네기가 직원들을 불러놓고 너무 근무를 많이 했으니 이제 휴가를 가져야겠다고 말하자 직원 가운데 한 명이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와 신난다, 마귀가 없는 동안 낮잠을 실컷 잘 수 있겠네!". [[마마보이]]였다는 말이 있다. [[분류:미국의 기업인]][[분류:1835년 출생]][[분류:1919년 사망]][[분류:던펌린 출신 인물]][[분류:영국계 미국인]][[분류:대학교 설립자]][[분류:카네기 멜런 대학교]]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